늦가을은 ‘슬픈 계절’로 통한다. 슬픈 계절에 만나요,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대중가요의 영향이 크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의 목소리까지도 애달프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찾아간 곳은 대흥사다. 해남 두륜산이 품고 있는 절집이다. 절집에는 단풍이 가을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다. 올가을 한반도의 마지막 단풍이다. 뒤태도 매혹적이다.
중생들의 간절한 마음 촛불로 활활-
절집에서 눈길을 끄는 게 연리목(連理木)이다. 일주문에서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목, 천불전 앞이다. 500여 년을 산 것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의 뿌리가 만나서 하나를 이뤘다. 키가 무려 20m, 나무 둘레가 4m를 넘는다. 높이나 품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연리목은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나 뿌리가 붙어서 하나 된 것을 가리킨다. 태풍 같은 자연현상에 의해 부러지면서 드러난 속살까지 닿아야 한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세포조직까지 서로 붙는다. 오랜 시간과 햇볕, 바람에 의해 두 몸이 하나가 된다.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빗대는 이유다. 정성껏 기도하면 인연이 맺어진다고 한다. 맺은 인연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소망도 빈다. 요즘 말로 ‘천년사랑’이다. ‘사랑나무’로도 불린다.
나무 아래에는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수많은 중생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밝혀놓은 촛불이다. 뿌리가 한데 붙은 나무가 행운을 가져다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대흥사에서 소원을 들어주는 기도의 대상은 또 있다. 산정에 누워있는 비로자나 와불이다. 얼굴과 몸, 다리까지 확연한 비로자나불이 누워있다. 와불이 신통함으로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이 전해진다.
‘전라도 천년수’로 지정된 만일암 터의 천년나무와 북암의 미륵불도 기도의 대상이다. 천년나무는 높이 22m, 둘레 9m에 이른다. 성인 예닐곱 명이 두 팔을 벌려야 닿는다. 수령 1100년의 느티나무다.
미륵불은 천동과 천녀가 서쪽으로 기우는 해를 붙잡아 나무에 묶어 놓고, 하루 만에 조성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국보로 지정돼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절집
대흥사는 유서 깊은 절집이다. 백제 때 창건된 도량이다. 여러 고승들에 의해 중건을 거듭하며 교종과 선종을 아우르는 큰 도량이 됐다.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대흥사는 보물과 천연기념물 등 유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차로 유명한 일지암과 북미륵암, 남미륵암, 진불암, 관음암, 청신암 등 암자도 많다.
대흥사에는 사천왕문이 없다. 천관산과 선은산, 달마산과 월출산이 동서남북에서 감싸며 보호하고 있어서다. 일찍이 서산대사는 ‘삼재가 미치지 못하고, 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을 땅’이라고 했다. 대사는 묘향산에서 입적하며 의발(衣鉢, 가사와 공양 그릇)을 대흥사에 두라고 했다.
천불전은 언제 어디서나 늘 부처님이 계신다는 의미에서 1000기의 불상을 모시고 있다. 건축물의 맵시가 빼어나다. 정면 3칸의 창살문이 꽃창살로 꾸며져 있다. 여백의 묘미가 꽃 문양을 더 빛내준다. 대흥사로 오는 길에 일본 표류를 경험한, 천불상에 얽힌 일화도 흥미롭다.
절집의 당우에 걸린 편액도 눈여겨볼 유물이다. ‘무량수각’과 ‘일로향실’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서산대사 유품이 보관돼 있는 ‘표충사’의 편액은 어필(御筆)이다. 정조가 썼다.
‘대웅보전’과 ‘천불전’ ‘침계루’는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가허루’는 창암 이삼만, ‘산신각’은 초의선사의 글씨다. ‘응진당’과 ‘백설당’ ‘명부전’은 해사 김성근의 필체다.
대흥사로 오가는 숲길도 황홀경을 연출한다. 매표소에서 절집까지 4㎞ 구간이 숲으로 터널을 이루고 있다. ‘십리숲길’이다. 아홉 굽이로 이어져 있다고 ‘구림구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숲 터널이 노랗고, 빨갛게 그리고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낙엽도 수북하게 쌓여 만추의 서정을 선사한다.
일주문을 지나서 만나는 부도밭도 운치 있다. 대흥사를 일으킨 서산대사와 초의, 만해 등 대종사와 대강사의 승탑이 모여 있다.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이는, 예전 집단시설지구 자리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 때 시민군들이 내려와서 묵었던 곳이다. 주민들은, 광주로 다시 올라가는 시민군에게 김밥과 음료를 건네며 격려했다. 5·18전남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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