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못지않게 남도의 가을을 낭만적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갈대밭이다. 사철 언제라도 좋지만, 이맘때 더 매혹적이다. 갈대밭은 날씨 좋은 날 마냥 걸어도 좋다. 비 내리는 날 우산 쓰고 걸어도 오붓하다.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갈대밭을 뉘엿뉘엿 거닐다 보면 ‘늦가을 여행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갈대밭은 순천만이 대표한다. 드넓고, 생태적으로도 귀한 곳이다. 국제적으로 보존협약을 맺은 람사르습지로도 지정돼 있다. 갈대가 바닷바람에 너울너울 춤을 추며 들려주는 화음도 감미롭다. 순천만에 버금가는 곳이 강진만이다.
강진만은 갈대밭과 갯벌을 합해 2700여 만㎡에 이른다. 남쪽 바다를 향하는 부드러운 곡선의 물길과 갯벌이 한데 어우러져 장관을 연출한다. 갈대밭 탐방로도 잘 단장돼 있다. 그 길을 따라 하늘거리며 농게, 칠게, 방게, 짱뚱어 등 갯벌생물을 살필 수 있다.
철새도 가까이서 만난다. 갯골에 겨울진객 큰고니(백조)가 날아와 있다. 수컷이 암컷에 구애하고, 부리를 이용해 먹이를 잡는 모습도 보인다. 가장 높이, 가장 멀리, 가장 빨리 나는 도요새과의 민물도요와 묏부리도요도 만난다. 쇠백로, 왜가리, 흰죽지, 흑부리오리, 청둥오리는 덤이다.
시선을 어디에 두든지, 한 편의 시가 되고 그림이 된다. 어느 방향으로 사진을 찍든지 작품사진이다. 갈대밭 사이를 걷는 사람들까지도 사진 속 배경이 되는 강진만이다.
해질 무렵 갈대숲도 황홀경이다. 이 풍경을 보려고 부러 시간 맞춰 찾는 사람도 많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갯벌도, 갈대밭도 온통 붉은색으로 물든다. 속살까지 드러난 갯벌의 색감도 시시각각 변한다. 누구라도 시 한 편 읊는 시인이 되고, 수채화 한 폭 그리는 화가로 변신한다.
다산이 갈밭마을 여인 만난 곳
강진만 갈대밭 주변 마을이 남포다. 탐진강과 강진천이 만나는 지점, 강진읍에서 다산초당 방면으로 가는 길목이다. 옛날 강진 15개 포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남당포구가 있던 자리다.
그때 남포는 강진의 관문이자 제주도로 통하는 바닷길이었다. 왜구들이 서남해안을 분탕질할 때는 죽음으로 지킨 포구다. 도암만에서 나는 물목은 물론 완도, 고금도, 해남과 장흥에서 나는 물산까지 모여들어 번성했다.
제방을 쌓아 논을 만들고 댐을 막아 물길을 막으면서 포구의 기능은 쇠퇴했다. 지금은 드넓은 갯벌과 무성한 갈대로 해양생태계의 보고가 됐다.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한 다산 정약용이 설움에 북받친 갈밭마을 여인을 만난 곳이 여기다. 정약용은 이 여인의 사연을 한시 ‘애절양(哀絶陽)’으로 읊었다.
당시엔 군적, 군대 편성의 기준이 되는 문서를 가리킨다. 군적에 오른 사람은 병역을 대신해 군포를 내야 했다. 관리들이 세금을 한 푼이라도 더 거둬들이기 위해 죽은 사람과 갓난아이의 이름까지 군적에 올렸다. 군포를 감당할 수 없었던 ‘이정’이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자신의 생식기를 잘라버렸다. 기막힌 현실을 관청에 하소연하러 갔다가 높은 문턱에 되돌아온 갈밭마을 여인의 사연을 노래한 시가 ‘애절양’이다.
다산은 ‘애절양’을 〈목민심서〉에 썼다. 목민심서는 조선사회의 실상을 고발하고,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수령의 본분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백성들을 바로 살려야 한다는 취지로 엮은 책이다. 그 근거의 하나가 갈밭(남포)마을 여인 이야기였다.
독립만세운동 불 지핀 남포마을
남포는 강진 근대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일제강점 때 독립만세운동이 펼쳐진 곳이다.
1919년 3월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민족시인 영랑 김윤식을 비롯 강진의 지도자들이 극비리에 봉기를 계획했다. 그러나 일제에 발각돼 실패했다.
계속된 2차 거사 때 강진읍 한 교회에서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고, 남포마을에서 태극기를 만들었다. 생선 상자에 태극기를 숨겨 장터로 갖고 가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독립만세 운동이 전남 전역으로 번졌다. 남포마을 앞에 ‘강진4·4 독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진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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