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서 정제되지 않은 저급한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말에는 그 사람의 품격이 배어 있다고 했다.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인데, 품격을 좀 갖추면 좋겠다.
조선시대의 품계는 9품으로 나뉘어졌다. ‘벼슬이 높은 1품은 아홉번 생각한 다음 한마디 말을 한다. 반대로 9품은 한번 생각하고 아홉 마디를 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정치인들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의 말을 잘 다듬은 ‘언어의 정원사’를 만나러 간다. 언어의 정원사는 영랑 김윤식(1903∼1950)을 가리킨다. ‘오매 단풍들겄네’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유명한 시인이다.
내면의 서정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한 김영랑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으로 간다.
1979년 대학가요제 때 은상을 받은 김종률·정권수·박미희 트리오의 노래 ‘영랑과 강진’의 노랫말처럼, 영랑의 글이 음악이 되어 흐르는 곳이다.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이다.
강진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언어로 가득한, 영랑의 시적 감흥이 그대로 남아있다. 고목이 늘어선 오래된 옛길과 고샅이 이어지고, 갈대가 우거진 강과 바다, 수확을 끝낸 들녘까지…. 눈에 보이는 풍경 하나하나가 매력적이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어들이 넘실댄다.
강진사람들이 얼마나 영랑을 자랑하고 사랑하는지, 강진에 세워진 김영랑 동상에서 금세 알 수 있다.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가우도에 영랑나루 쉼터가 있고, 거기에 영랑이 앉아 있다. 읍내 모란공원에는 손에 시집을 한권 든 영랑이 있다.
‘영랑’이나 ‘모란’이 들어가는 가게 이름도 많다. 모란슈퍼, 모란다방, 모란미용실, 영랑쉼터, 영랑화랑 등등…. 영랑생가와 영랑이 활동한 시문학파의 기념관도 읍내 남성리에 있다.
짧은 생 불꽃처럼 산 민족시인 영랑 김윤식
영랑생가로 먼저 간다. 영랑이 떠난 뒤에, 몇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일부 모습이 바뀐 집을 1985년 강진군에서 사들여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생가의 지붕도 최근 새로 이엉을 올려 말끔하게 단장돼 있다. 담장 옆의 은행나무가 노란 은행잎을 수북하게 떨궈서 연출한, 노란 양탄자도 깔려 있다. 늦가을의 서정과 잘 어우러지는 영랑생가이다.
영랑 김윤식은 강진에서 나고 자라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 휘문의숙에 들어갔다가 1919년 기미독립운동 때 강진으로 내려와서 독립운동(강진4·4운동)을 이끌었다. 일본경찰에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일제강점기 내내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삭발령을 거부하며 의롭게 살았다.
1930년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우리 현대시의 새 장을 열었다. 1934년 <문학>지에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했다. 한국전쟁 때 부상을 당해 47살의 나이로 타계했다.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면서 87편의 시를 남긴 민족시인이다.
영랑 김윤식과 시문학파를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 시문학파는 한국 서정시를 이끈 문학동호인들의 모임이다. 1930년대 순수시 운동을 전개했던 사람들이다. 영랑 김윤식을 비롯 박용철·정지용·정인보·이하윤·변영로·김현구·신석정 등이 참여했다.
동호회지 <시문학>은 1930년 3월 창간해서 이듬해 10월 제3호를 끝으로 중단됐다. 하지만 감상적 낭만주의 사조에서 벗어나 이 땅에 순수문학의 뿌리를 내리게 한 모태가 됐다.
시문학파를 기리는 기념관이, 영랑생가 앞에 있는 강진시문학파기념관이다. 조태일문학관, 김유정문학관, 최명희문학관, 이육사문학관, 채만식문학관 등 특정 문인을 기리는 문학관과 다르다.
창의적 리듬, 참신한 감각 돋보인 시문학파
강진시문학파기념관은 한 유파를 아우르는 우리나라 최초의 문학관이다. 창의적인 리듬과 참신한 감각이 돋보인 시문학파의 시는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현대시의 출발점이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모국어를 세련되게 구사하며 한국시의 예술적 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평을 받았다.
기념관 입구에 시문학 1호와 김영랑·박용철·정지용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정인보·이하윤·변영로를 포함한 시문학파 9명의 얼굴도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변영로의 ‘논개’, 정지용의 ‘향수’, 박용철의 ‘떠나가는 배’, 김윤식의 ‘모란이피기까지는’ 시도 만날 수 있다.
전시관에서는 창조파에서부터 청록파까지, 시문학파 이전과 이후의 유파를 두루 소개하고 있다. 시문학의 탄생 배경과 의의, 시문학파의 시세계와 시인도 알 수 있다. 늦가을 여행과 아주 잘 어우러지는 영랑생가이고, 시문학파기념관이다.
시문학파기념관에서 강진만 생태공원이 가깝다. 드넓은 갈대밭은 언제라도 좋지만, 이맘때 더 매혹적이다. 날씨 좋은 날 마냥 걸어도 좋고, 비 내리는 날 우산 쓰고 걸어도 낭만적이다. 가족이나 연인·친구끼리 갈대밭 탐방로를 따라 싸목싸목 걷다보면 늦가을여행 제대로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강진읍내 보은산 고성사의 호젓한 늦가을 풍경도 멋스럽다. 사의재 저잣거리의 한적한 모습도 정겹다. 영랑이 만추와 만나 더 아름다운 강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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