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하면, 왠지 올드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달리 표현하면 예스러운 곳이다. 한동안 여행객들 마음에서도 밀려나 있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지만, 크게 치장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도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떠올랐다.
고대 영산강문화를 꽃피운 나주는 오래 전 전라도의 행정과 경제·군사·문화의 중심이었다. 983년 고려 성종 때 설치한 나주목(羅州牧)이 913년 동안 유지됐다. 나주를 ‘천년고도’, ‘목사골’이라 부르는 이유다.
나주는 북한산과 한강을 배산임수로 삼은 한양에 빗대 ‘작은 한양’으로 불렸다. 뒤엔 금성산이 버티고, 앞으로는 영산강이 흐른다. 당시 나주는 인구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흥선대원군은 ‘나주 가서 세금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둘레 3679m의 나주읍성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면적도 97만㎡로 수원화성의 2배였다.
소원 들어주고, 행운도 가져다주는 나무
옛 나주읍성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지닌 ‘작은 궁궐’이 금성관이다. 금성관은 옛 나주목의 관아다. 관찰사가 업무를 보고, 조정에서 내려온 사신이 묵어갔다.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와 궐패를 두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를 올리는 망궐례도 행해졌다.
금성관은 1470년대 후반 나주목사 이유인이 세웠다. 1592년 임진왜란 땐 김천일이 의병을 모아 출병한 곳이 금성관 망화루 앞이다. 일제강점기엔 명성황후 분향소가 설치됐고, 내부를 고쳐 나주군청사로 쓰기도 했다. 1980년대 말 들불처럼 번진 수세 거부운동의 중심도 금성관 일대였다. 금성관은 조만간 해체보수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목사내아(牧使內衙)는 나주목사의 살림집이었다. 거문고 소리에 학이 춤을 추는 곳이라고 ‘금학헌(琴鶴軒)’이라 불렸다. 지은 지 200여 년 됐다. 일제강점기에 군수 관사로 쓰이면서 변형된 것을 복원했다. 관광객이 하룻밤 묵는 숙박 체험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수령 500년 된 ‘벼락 맞은 팽나무’도 있다. 저마다의 소원을 들어주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나무다.
옛 읍성의 4대문, 동점문과 서성문·남고문·북망문도 복원됐다. 서성문은 동학혁명군과 수성군의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남고문 광장은 1980년 당시 삼각공원이 있던 곳으로, 나주 민주화운동의 거점이었다.
나주향교의 격도 높다. 앞쪽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공간을, 뒤쪽에 명륜당을 두고 공부를 가르치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모양새다. 전국 향교 가운데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불에 탄 한양의 성균관을 복원할 때 나주향교를 본떠 다시 지었다고 전해진다.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수령 500년 된 대성전 앞 은행나무, 수령 400년 된 명륜당 앞 비자나무도 기품 있다.
전통 살아있는 야외 박물관이자 전시관
향교와 담장을 경계로 한 복합문화공간 ‘39-17마중’도 별나다. 건물이 지어진 1939년의 정서와 문화를,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2017년이 마중 나가 되살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옥의 구들장과 툇마루, 일본식 기와와 창문, 서양식 방갈로를 가미한 집이 멋스럽다.
난파고택도 있다. 난파 정석진이 쓰던 정자를, 아들 정우찬이 아버지를 기리려고 다시 지었다. 정석진은 1894년 동학농민군으로부터 나주읍성을 지킨 인물이다. 이듬해엔 단발령에 반발해 을미의병을 일으켰다가 참수당했다.
밀양박씨 청재공파 종가인 남파고택도 지척이다.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초당채 등이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지어진 집이 초당채다. 이 집에 살고 있는 종손(박경중)의 6대조인 박승희가 1884년에 지었다. 안채는 고조 박재규가 1917년에 지었다. 박재규의 호를 따 ‘남파(南坡)고택’으로 불린다.
남파고택 사람들은 독립운동에도 앞장섰다. 사랑채를 지은 박경중의 증조 박정업이 1900년대 초 만든 태극기가 3·1운동 때 사용됐다. 해방 이후 기념식에도 게양됐다. 태극기가 지금도 전해온다. 남파고택은 1929년 학생독립운동과도 엮인다. 당시 일본학생에 머리채를 잡힌 여학생 박기옥, 일본학생에 주먹을 날린 남학생 박준채가 이집 식솔이었다.
나주의 가온누리가 원도심이다. 행정구역은 나주시 성북동과 금남동에 속한다. 옛 나주목 행정치소인 나주읍성을 중심으로 오래된 골목과 나무, 집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긴 골목 ‘진고샅’과 보리를 타작하고 말린 ‘보리마당’도 옛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다. 옛 금남금융조합 등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도 남아 있다. 옛 생활용품을 모아 보여주는 ‘사매기 째깐한 박물관’도 정겹다.
원도심에는 상가와 각급 기관·단체도 모여 있다. 학생독립운동 진원지인 옛 나주역과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나주공공도서관, 나주종합사회복지관, 나주배원협 공판장, 나주중·고등학교 등이다. 옛 잠사공장을 재생한 문화예술창작발전소 나비(羅飛)센터, 방앗간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나주 정미소(情味笑)도 있다.
발길 닿는 데마다 문화유산이고, 전통이 살아 숨쉬는 야외 박물관이다. 예나 지금이나 원도심은 나주역사와 문화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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