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비상계엄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5·18사적지를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 방문객들은 광주 금남로 일대와 5·18민주묘지를 주로 찾는다.
광주에는 전남대학교 정문, 옛 전남도청과 민주광장, 상무대 옛터 등 32곳이 5·18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사적지는 전남도내에도 있다. 5·18은 광주를 중심으로 전남도민이 함께 싸운 민주화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사적지는 목포, 나주, 화순, 강진, 해남, 영암, 무안, 함평 등 8개 시·군 29곳이 지정됐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전라남도의 5·18사적지를 찾아간다.
5․18민주화운동은 부당한 국가권력과 신군부의 집권 음모에 맞선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었다. 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쓴 항쟁을 벌였다.
5월 21일 석가탄신이었다.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공수부대가 시민을 향해 집단 발포를 했다. 우리 군대가, 우리 국민에게 총을 쏜 것이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병원은 부상자와 시신으로 넘쳐났다.
시민들이 무장을 한 계기다. 시민들은 나와 내 가족, 이웃을 지키기 위해 손에 무기를 들었다. 광주 인근 나주, 화순, 영암 등지의 경찰서와 예비군 탄약고에서 무기를 꺼냈다. 시민군이 결성됐다.
계엄군의 만행과 광주 참상은 전남 곳곳으로 전해졌다. 당시 광주는 전라남도의 도청소재지였다. 광주와 전남은 하나의 생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광주와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된 목포항쟁
80년 5월 목포에는 광주참상이 바로 전달됐다. 김대중 연행 소식도 전해지면서 시민들이 동요했다. 목포항쟁은 5월 21일 공수부대의 도청 앞 집단 발포 이후, 광주의 차량시위대가 목포에 도착하면서 활기를 띠었다.
22일 새벽, 목포역 대합실이 시위대에 의해 장악됐다. 안철의 집에 모인 재야 민주인사들이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이후 항쟁을 시민민주투쟁위원회가 이끌었다. 집회와 시위가 목포역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시간과 장소는 달랐지만, 목포항쟁은 광주와 비슷하게 전개됐다. 광주에 지휘본부 격인 전남도청이 있었다면, 목포에선 목포역이 그 역할을 했다.
당시 목포역사 2층에 항쟁지도부와 상황실을 갖춘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가 설치됐다. 1층엔 공수부대에 무참히 죽임을 당한 광주시민을 추모하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목포역은 목포항쟁의 심장부였다.
중앙공설시장 옛터도 목포 민주화 투쟁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당시 시장상인들이 함께 시위하고 시위대에 떡과 김밥, 도시락, 음료 등을 제공하며 격려했다. 목포공동체 정신의 현장이었다.
나주시민은 공수부대의 학살 만행을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남쪽으로 영암과 강진․해남까지, 다른 한편으론 함평과 무안․목포로 달려갔다. 전남도민이 함께 민주항쟁에 참여하는 발판을 놓았다.
21일 광주고속 버스를 타고 온 광주시위대는 금성파출소 무기고를 열어 M1과 칼빈소총 800여 정, 실탄 5만여 발을 얻었다. 광주의 시민군이 무장하고 공수부대에 맞설 기회를 만들어줬다.
향토사단 군인 총격에 의한 사상자 발생
80년 당시 광주와 같은 생활권인 화순엔 광주 시위와 공수부대의 만행이 바로 전해졌다.
화순읍에 사는 일부 청년들은 광주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대는 차량을 이용해 공수부대의 만행을 알리며 군민의 동참을 호소했다.
광주와 화순의 경계를 이루는 너릿재에서는 계엄군의 총격으로 시민이 사망했다. 화순광업소는 시민군의 든든한 뒷배가 된 다이너마이트를 제공했다.
해남군청 앞 광장에선 광주에서 내려온 시위대와 군민이 한데 모여 신군부의 내란을 성토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버스를 탄 시위대는 해남경찰서와 완도경찰서에서 총기류를 획득했다.
우슬재와 마산면 상등리에선 군인의 총격에 의한 사상자가 나왔다. 향토사단인 31사단 93연대 2대대는 해남의 관문인 우슬재에서 트럭에 총격을 가했다. 트럭에 타고 있던 나주고 학생 김귀환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강석신은 시력을 잃었다.
5․18민주화운동 45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아직도 5·18을 욕보이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발포 책임자를 포함해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고, 이에 따른 책임자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과 배상, 기념사업도 제대로 추진돼야 한다.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만이, 80년 5월과 같은 가슴 아픈 일의 반복을 막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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