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샅이 조붓하다. 고샅 돌담이 다소곳하다. 정겹다. 돌담 너머로 고택이 즐비하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집안과 밖의 구분도 크지 않다. 옛사람의 마음결 같다. 전통사회의 흔적이다.
월출산에서 시작된 구림천이 마을을 휘돌아 흐른다. 골목을 따라 하늘거리는 발걸음이 가붓하다. 살랑이는 봄바람도 살갑다. 마을이 한 권의 시집 같다. 풍경은 한 편의 시다. 영암군 군서면 구림 마을이다.
구림천변에 조종수 가옥이 자리하고 있다. 월출산 자락에서 400년 넘게 대를 이어온 창녕조씨(昌寧曺氏) 가문의 옛집이다. 화려하기보다 수수하다. 아름답다. 주변 풍광과도 잘 어우러진다.
조종수 가옥은 창녕조씨 태호공파 종갓집이다. 태호공파는 구림대동계의 중심에 섰다. 1500년대 중후반 시작된 대동계(大同契)는 향촌의 어려움을 서로 도우며 미풍양속을 지키는 동계(洞契)다. 신분을 떠나 양반과 평민이 더불어 사는 사회의 본보기다. 오늘날의 지방자치이고 분권인 셈이다.
대동계 모임 장소가 조종수 가옥 앞 회사정(會社亭)이다. 회사정은 1646년 처음 세워졌다. 마을 대소사를 논의하고, 행사도 여기서 열었다. 손님맞이 장소로도 쓰였다. 3·1운동 때 독립만세를 외친 곳도 여기다. 한국전쟁 때 불타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85년 복원했다. 구림천변 소나무 숲에 들어앉아 있다.
구림대동계 문서는 모두 3종 81책으로 이뤄져 있다. 동계 설립 과정과 1600년대부터 1700년대 중반의 동헌 규약이 전해진다. 구림대동계 문서가 전남문화유산자료로 지정돼 있다. 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자긍심이다.
조종수 가옥에 서호사(西湖祠)가 있다. 현건, 박성오 등과 함께 구림대동계 규약을 만들고 회사정을 중창한 조행립을 추모하는 사당이다. 조행립은 사헌부 감찰, 태인현감, 익산군수 등을 지냈다. 1677년 처음 건립된 사당은 대원군 때 철폐됐다가 다시 지어졌다.
조종수 가옥은 1870년 건립됐다. 당초 문간채와 사당 등을 갖췄다는데, 지금은 안채만 남아있다. 정면 5칸, 옆면 1칸 ㅡ자형 안채는 부엌과 출입문 일부를 고쳤을 뿐이다. 부엌과 큰방, 대청 2칸, 건너방으로 이뤄져 있다.
사면을 툇간으로 돌린 것이 특징이다. 툇간은 비좁은 실내 공간의 이용을 합리적으로 해준다. 정갈하면서 가지런한 팔작지붕의 기와선도 가풍을 보여준다. 종가의 자랑인 씨간장도 전해오고 있다. 전남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안채를 소나무와 배롱나무 우거진 작은 동산이 감싸고 있다. 동산 뒤로는 월출산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쳤다. 집은 동산을 등지고 서쪽을 향하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가 돋보인다. 월출산 기암괴석이 집의 정원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차경(借景)의 지혜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태를 고스란히 담았다.
조종수 가옥은 박제된 목조 건물이 아니다. 월출산을 닮은 선비의 기개가 서려있다. 월출산 천황봉에서 떠오른 달빛에 비치는 한옥도 멋스럽다. 고즈넉한 집 분위기는 우리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준다. 바람 끝에 실려 온 월출산 향기는 마을 이야기를 속삭여 준다.
팽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수문장처럼 지키고 선 연주현씨(延州玄氏) 종갓집도 지척에 있다. 죽림정(竹林亭)이다.
그 앞에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비가 서 있다. ‘만일 호남이 없으면, 그대로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순신이 친구 현덕승(1555~1627)에게 보낸 편지글에 나오는 구절이다. 편지는 임진왜란 때인 1593년 7월 17일 보냈다.
조종수 가옥을 품은 ‘비둘기 숲’ 구림은 도선국사(827~898)의 탄생 설화와 엮인다. 냇물에 떠내려온 푸른 오이를 먹은 최씨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 이를 부끄럽게 여긴 집안에서 숲속 바위에 아기를 내버렸는데, 비둘기 떼가 돌봤다. 그 아기가 ‘풍수지리의 대가’ 도선국사라는 얘기다. 구림(鳩林)의 지명 유래다.
숲속 바위가 국사암(國師巖)이다. 도선국사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성혈이 군데군데 보인다.
일본에 천자문과 백제문화를 전한 왕인박사 태 자리도 구림이다. 왕인은 405년 응신천황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아스카문화의 초석을 닦았다. 왕인은 구림마을 상대포(上臺浦)에서 배를 탔다. 당시 상대포는 바다를 통해 대륙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왕건을 도와 고려의 기틀을 다진 최지몽도 이 마을에서 났다. 석봉 한호가 글을 쓰고 어머니는 떡을 썬 곳도 구림마을이다. 개성에서 태어난 한석봉은 스승을 따라 영암에 왔다. 조종수 가옥 옆 육우당 현판이 한석봉의 글씨로 남아있다.
구림마을에 예술혼도 깃들어 있다. 1200여 년 전 유약을 칠한 도자기를 처음 생산한 곳이다. 청자 이전에 만들어진 시유도기(施釉陶器)는 고려청자 탄생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 시유도기의 역사를 마을에 있는 영암도기박물관에서 엿볼 수 있다.
영암군립 하정웅미술관도 마을에 있다. 영암 출신 재일교포 하정웅(1939∼)이 기증한 미술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전도 열린다. 전통마을에 자리한 현대 미술관이다.
구림은 오랜 전통을 지닌 역사마을이다. 예부터 빼어난 학자와 문장가 등 수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옛 도자기와 현대미술도 만날 수 있다. 인간의 사상과 문화를 이해하는 인문학의 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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