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소망, 평화와 기쁨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성탄이 다가왔다. 비상계엄 선포에 이은 대통령 탄핵과 후폭풍, 거기에다 계속되는 불경기 탓에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연말과 성탄이 다가왔다.
여느 때보다 차분한 연말이다. 성탄의 의미를 다시 새긴다. 불교의 유구한 역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천주교의 역사도 깊다. 생활 주변에 의미있는 성당이나 천주교 사적도 많다.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평화롭고 따뜻한 천주교, 역사와 의미까지도 남다른 전라남도의 성당을 찾아본다.
‘준대성전’ 칭호받은 목포 산정동성당
전남의 성당에서 가장 역사 깊은 곳은 목포 산정동성당이다. 가톨릭목포성지에 있는 산정동성당은 교황청으로부터 준대성전 칭호를 부여받았다. 준대성전은 역사, 예술, 신앙적으로 중요한 성당에 부여되는 명예로운 칭호다.
산정동성당은 1897년 광주대교구에서 처음 설립된 본당이다. 광주대교구의 뿌리 같은 곳이다. 1896년까지 전라도엔 전주 전동성당, 완주 되재성당, 김제 수류성당이 있었다. 조선 8대 교구장 뮈텔 주교가 전라도 나바위(익산)와 산정동(목포)에 본당 설립을 결정하면서다.
산정동성당에선 한국전쟁 때 3명의 사제가 순교했다. 미국 출신 광주대교구장 패트릭 브레넌 몬시뇰, 아일랜드 출신 산정동성당 토머스 쿠삭 주임신부와 존 오브라이언 보좌신부다. 성당에 순교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53년 가톨릭 평신도 신앙 공동체인 레지오마리애가 처음 도입된 곳이기도 하다.
목포에서 가까운 무안엔 몽탄성당이 있다. 호남의 첫 한국인 사제 이내수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1899년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내수 신부는 1년 7개월 만에 폐결핵으로 선종했다. 이내수 신부의 묘가 무안군 몽탄면 사천리에 있다.
우리나라 최서남단 해역 신안 흑산도엔 흑산성당과 흑산성당 사리공소가 있다. 흑산성당은 1958년 목포 산정동 본당에서 분리됐다. 초대 주임으로 브라질 요한신부가 부임했다. 무료 의약품 지원, 신용협동조합과 발전소 설립, 감귤단지 조성, 중학교 교육과정과 무료 급식소 운영 등을 통해 지역과 주민을 도왔다. 당시 유품과 기록물을 전시한 작은 박물관이 만들어져 있다.
흑산도 사리는 다산 정약용의 형, 손암 정약전이 신유박해 때 유배와 8년 동안 생활한 곳이다. 정약전은 이곳에 서당 ‘사촌서실’을 짓고 후학을 가르쳤다. 바닷물고기 생태를 다룬 〈자산어보〉도 완성했다. 사리공소는 사촌서실 아래에 1958년 들어섰다. 옛 공소의 돌장식이 멋스럽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돌담도 아름답다.
정해박해 진원지에 들어선 곡성성당
곡성성당은 1827년 일어난 정해박해의 진원지에 들어섰다. 을해박해(1815년)를 피해 곡성에서 옹기를 빚으며 살던 주민의 사소한 다툼을 빌미로 천주교인 박해가 다시 시작됐다. 곡성에서 시작된 천주교인 검거 선풍이 전라도 전역으로, 경상도․충청도와 서울까지 확산됐다.
당시 천주교인을 잡아 가둔 감옥 자리에 성당이 들어섰다. 곡성성당을 ‘옥터 성지’라 부르는 이유다. 성당 자리에 당시 임시 감옥으로 쓰인 곡성현청의 객사가 있었다. 교인들이 여기서 옥고를 치렀다. 곡성성당은 1950년대 후반 들어섰다. 성당에 옛 감옥과 형틀이 복원돼 있다.
구례성당은 곡성 본당에서 분리됐다. 1958년 공소를 세우고, 1970년 성탄 전야에 본당으로 승격됐다. 가톨릭 신도들의 성지 순례지가 된 피정의 집도 지리산 피아골에 있다.
전남동부권 순천엔 저전동성당이 있다. 1916년 목포에서 세례를 받은 송성문 부부로부터 시작됐다. 1932년 본당으로 승격됐다.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사랑의 집을 개설하는 등 지역주민과 함께했다.
여수의 천주교는 1936년 동산동성당에서 시작됐다. 고흥 소록도엔 2번지(병사)성당과 1번지(직원)성당이 있다. 1번지성당의 십자가가 붕대에 감겨있다. 한센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순교사 기념 영광성당과 나주성당
영광성당도 순교자 기념성당이다. 신유박해와 병인박해 때 2명씩 순교했다. 성당 입구 기념문의 4개 칼 모양이 순교자를 상징한다. 성당 마당에 청동으로 만든 순교자 기도상도 설치돼 있다. 작지만 아담한 순례길도 만들어져 있다.
함평성당은 1930년 목포에서 이사 온 이계윤․최말녀 부부로부터 시작됐다. 1945년 12월 본당으로 승격됐다. 1952년 봉헌식을 한 성당 건물은 붉은 벽돌 외벽으로 멋스럽다. 세월의 더께도 고스란히 묻어있다. 2004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나주성당도 순교자 기념성당이다. 병인박해가 계속되던 1871년 윤문보 등 3명이 나주감옥으로 잡혀왔다. 이들은 이듬해 당시 군사훈련장이던 무학당에서 순교했다. 무학당은 지금의 나주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무학당의 주춧돌 10개를 옮겨와 나주성당 기념 조형물 주춧돌로 썼다.
나주성당에는 빈 무덤 형태의 순교자 기념 경당이 만들어져 있다. 입구가 무게 60톤 되는 돌로 이뤄졌다. 실내는 4면이 닫힌 벽으로 돼 있다. 순교자들의 사면초가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경당 앞에 청동으로 만든 순교자의 기도상도 설치됐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피에타상도 있다.
한국 까리다스 수녀회 출발지도 나주성당이다. 까리다스 수녀회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건 1956년. 그해 12월 나주본당에 수녀가 파견되고, 한국인 지원자를 받기 시작하면서 한국 까리다스 수녀회가 만들어졌다. 그때 그 집이 복원되고, 전시관도 꾸며져 있다.
나주에 노안성당도 있다. 몇 해 전까지 크리스마스 축제를 하면서 한국판 산타빌리지, 산타마을로 불린 곳이다. 노안성당은 1927년 지어진 붉은 벽돌집이다. 나주 첫 천주교회다. 옛 성당의 고풍스런 아름다움과 100년 넘은 역사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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