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 차분하게 한 해를 정리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를 맡고, 비움의 미학까지 배울 수 있는 산속 암자 불일암이다. 순천 송광사에 딸린 불일암은 법정스님과 엮이는 암자다.
‘내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2010년 3월 입적한 스님이다.
불일암은 무소유를 주창한 법정스님이 오래 머물고, 잠들어 있는 곳이다. 스님답게 살다 스님답게 간 법정스님의 트레이드 마크인 무소유의 산실이다.
법정스님은 1932년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났다. 본명 박재철,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목포상고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에 다니다가 출가했다. 통영 미래사에서 승려생활을 시작했다.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가 생가 터다. 평생 무소유로 살다 간 스님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지 않았다. 스님의 이름을 붙인 마을도서관이 있다. 전시물도 스님의 서책 14권과 찻잔 1점, 사진 2점이 전부다. 스님 어록이 새겨진 포토존과 불일암에 있는 나무의자와 똑같은, 스님 의자 복제본이 있을 뿐이다. 이름은 마을도서관이지만, 스님의 무소유와 나눔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무소유는 불필요한 것 갖지 않는 것
불일암도 조용하면서 차분한 분위기의 암자다. 불일암은 법정스님이 19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17년 동안 머문 곳이다.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를 사회운동으로 승화시킨 스님의 공간이었다. 무소유의 산실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고,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부와 명예를 쫓고, 소유욕 강한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 법문이다. 한 마디로 욕심부리지 않고, 소탈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아름다운 향기가 묻어나고, 비움의 미학을 가르쳐준 말씀이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로 살다가 무소유로 갔다. 특정 종교를 떠나 우리 국민이 존경하는 우리 시대의 큰 스승이자 수행자였다.
불일암은 송광사 청량각에서 왼편 계곡을 따라간다. 참나무 숲길, 삼나무와 편백숲길, 대나무 숲길을 지나 만난다. 주차장에서 암자까지 솔방솔방 30∼40분이면 닿는다. 불일암으로 가는 길이 ‘무소유 길’로 이름 붙여져 있다.
이름만으로도 마음 넉넉하고 편안해지는 무소유길은 법정스님 입적 뒤 송광사와 순천시에서 다듬었다. 길을 새로 내지 않고, 안내판 몇 개 설치했을 뿐이다. 스님의 법문 몇 구절 팻말로 세워둔 게 전부다.
스님의 마음가짐으로 쉬엄쉬엄 걸으면 더 좋다.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를 열고서.
맑고 향기로운 삶 생각게 하는 암자
불일암도 내집처럼 편안한 느낌을 안겨준다. 법정스님이 직접 짓고 생활한 작은 요사채가 있고, 스님이 가꾼 작은 채마밭이 있다. 스님의 손때 묻은 곳이다.
법정스님은 1975년 여기에 암자를 짓고 ‘불일암(佛日庵)’ 편액을 내걸었다. 지금까지 모두 330만 부 팔린 〈무소유〉를 시작으로 〈산방한담〉 〈물소리 바람소리〉 〈텅 빈 충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버리고 떠나기〉 등 많은 책을 쓴 곳이다.
스님은 이곳 후박나무 아래에 수목장으로 모셔졌다. 스님이 암자를 지을 때 심었고, 생전 스님이 가장 사랑한 나무다.(사실은 후박나무 아니고, 향목련-일본목련-이다)
법정스님은 이 나무를 통해 사계절 변화를 표현하기도 했다. 스님은 출타했다가 돌아오면 ‘잘 있었냐?’ 하며 나무를 안아줬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나무를 보며 스님을 생각하고, 나무를 껴안으며 스님을 떠올린다.
나무 앞에 스님이 겨울 땔감으로 쓰던 장작으로 만든, 조금은 조잡하게 생긴 나무의자도 놓여 있다. 우수영 생가 터에 복제해 놓은 그 의자다.
맑고 향기로운 삶을 다시 한번 생각게 하는 불일암이다. 시대의 스승으로 살다 간 법정스님의 체취가 남아있는 순천 송광사 불일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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